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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서른살 소녀의 감수성을 엿보는 재미 '러블린의 멜로디북'


 

 

이틀전 탤런트 조안이 쓴 '단 한마디'를 읽고 연이어 연예인이 쓴 책을 읽게됐다.

오늘 읽은 책은 가수 린의 '러블린의 멜로디북'

아마 자기자신을 지칭하는 러블리~ 린 의 줄임말이 러블린 이겠지? 멜로디북이면 노래책인데?

햇병아리 같은 샛노란 컬러에 깔끔하고 정갈한 표지가 무척 맘에 들었다.

조그마한 사이즈, 그리고 책을 휘리릭~ 한번 훓어보니 사춘기 소녀의 일기장마냥 아기자기한

사진들에, 그림에, 낙서에, 자기고백 글들로 이루어져있다.

 

린(Lyn) 본명은 이세진. 2000년에 '기억'이란 타이틀곡으로 1집을 발표한, 올해 11년차 발라드 가수다.

히트곡은 <사랑에 아파본적 있나요>, <사랑했잖아>, <보통여자>, <어떡하라고>, <날 위한 이별>,

<이별살이>, <사랑 다 거짓말>, <매력쟁이>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으며 발매한 음반만 스무장에

이른다.  쭉쭉빵빵한 걸그룹이나 아이돌 그룹, 댄스곡 위주의 가수들이 차지하고 있는 티비에는

잘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노래 잘하는 가수' 팬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있다.

 

연예인들의 출간 러시에 편승해 그녀도 책을 냈다. 도대체 어떤 책일까?

특이하게도 그녀가 쓴 에필로그를 먼저 소개 해야겠다.

 

요즘은 개나 소나 책을 낸다는 얘기도 있는만큼 어떤 무리들에게는 제가 '개나 소' 둘 중에

하나로 비춰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니 더 열심히, 진심을 가득 담아 원고를 쓰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고요...(후략)

자칫 욕먹을 각오로 낸 책, 러블린의 멜로디북은 그러나 나에게는 합격점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소소한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 기분을 느낄수 있었는데, 사춘기 소녀의 일기장은

아니었고 '서른살 소녀의'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 느낌?

 

중간중간 아래 그림과 같은 유치함도 마음껏 보여주고,

 

 



 

 

또 노래가사와도 같은 싯구들도 보여주고,

 

 



 

지나왔던 사랑이야기와 자기가 꿈꾸는 삶, 후회, 각오, 일상등을 '도곤도곤'하게 표현해낸다.

 

* 도곤도곤 : 콩당콩당 혹은 두근두근

 

이밖에 사전에도 없는 생소한 의성어, 의태어, 합성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식이다.

 

"처음이 아닌데 꼭 그런 것처럼 마음이 보폴거린다"

"~ 항상 나에게 미국쟁이라고, 미국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투덜대지만 난 언제나 '미제는 똥도 달다'

라는 옛말도 못 들어봤냐고 우쭈쭈대며여러 방면으로~"

"유심히 보게 된 그의 꼬물거림들로 나는 괜히 심장이 옹골옹골해졌다"

"올리브유를 프라이팬에 두룽두룽한바퀴 두르고"

"브로콜리의 초록한본연의 맛을 느낄수 있죠"

 

* 보폴거린다 : 폴폴거린다

* 우쭈쭈대며 : 우쭐해하며 비아냥거리는 모양새

* 옹골옹골 : 설레임과 흥분 상태의 중간쯤?

* 두룽두룽 : 골고루, 적당히

* 초록한 : 싱싱한

 

이를두고 P162 57번째 글에서 '크레이티브한 그 것' 이란 글로 이유를 밝히는데,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들을 만들어 얘기하고 싶다.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지는 나만의 표현들.

  예를 들면 국어사전에는 없는 '오롱하다'라는 말.

  나한테 오롱함이란.

  자기전에 그 나른한 때, 그때 보드라운 이불을 발가락으로 부비부비 할 때.

  난 그 기분이 참 오롱하다.

  기분이 '보폴거린다'는 말도 사전엔 없지만 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그런게 재미있고 좋다.

  흐흐. 문법에 꼭 맞아야 하나? 국어사전에 꼭 명시되어 있어야 하나?

 

  "마음을 얘기하는건데, 마음대로 해도 괜찮잖아요"

 

 

그러고보니 책에서 자주 사용되는 국적불명의 새로운 의성어, 의태어들은 읽기 그리 난해하지

않고 쏙쏙 이해되고 있다. 린은 엉뚱쟁이다.

게다가 절대공감 '열가지 부탁'

 



 

하나, 친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부르지 좀 마세요. 속 보이거든요.

두울, 뭐 대단한 서비스 받아가며 밥 먹을 생각은 없지만 좀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그래도 손님인데.

세엣, 밥 한번 먹었다고 우리 사이를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사람 일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요.

네엣, 내가 예전에 어땠고 누굴 만났고 평소 어떤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리지 좀 마세요.

네 과거는 뭐 털어서 먼지 안 날 것 같으세요?

다섯, 돈도 잘 버는 양반이 제발 나한테 얻어먹지 좀 마세요. 네 돈만 아까운거 아니거든요.

여섯, '야!'라고 부르지 좀 마세요. 나도 엄연히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일곱, 인사하기 싫으면 그냥 지나가세요. 뻘쭘한 표정으로 받는 인사는 하루종일 기분 나빠요.

여덟, 튕기지 좀 마세요. 네가 어디가서 나 같은 여자를 만나겠어요.

아홉,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여태껏 당신만큼 나를 사랑해준 사람은 없었어요.

여얼, 멀리에 있다고 내 마음 의심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정말 당신밖에 모른단 말이에요!

 

책을 읽으며, 아니 서른살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며, 문득 그녀의 노래가 듣고싶어졌다.

이런 감수성과 위트를 가지고 익살스러운 엉뚱쟁이 그녀의 노래는 어떤 맛일까?

11년차 발라드 대표가수로 한껏 재고 다닐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소지섭에 열광하고,

드라마에 빠져있으며, 좋아하는 노래 이어폰 끼고 듣기를 좋아하고, 낯선곳에서의 멋진 남자와

로맨틱한 일탈을 꿈꾸면서, 식당의 불친절함을 툴툴거리는,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와 김치를

곁들인 삼합에 막걸리를 마시는 멋을 아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읽는 사람의 기분까지 업시켜 주는 책.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십대보다는 이삼십대에게

어필하는 책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