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서른이 되어도 괜찮을까?', '이십대 사춘기 숙녀의 발라당 까진 이야기', '외롭지만 혼자가 편한 그녀의 감쪽같은 일탈법' 이 책을 설명하는 어구들이 재밌다. 이 책 <숙녀발랑기>는 전문작가가 쓴 정통문학(?)은 아니다. 그냥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리고 글쓰는 재능이 특출난 일반인이 쓴 일기장과도 같은 책이다. 십수년 전만해도 이런 책이 출판되어 나온다는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재능만 있으면 누구라도 자기 책을 낼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우리는. 꼭 등단하지 않더라도, 신춘문예를 통과하지 않더라도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수필을 쓴다. 그리고 인정받고, 돈도 벌고, 전문 작가가 되기도 한다. 이주윤이라는 이 책의 저자도 이 시대 그런 기회를 잘 잡았다. 그리고 책도....훌륭하다.
이대로 서른이 되어도 괜찮을까? 라는 표지문구를 보면 서른을 앞둔 여성들의 불안한 심리를 다루는 많은 책들처럼 이십대 후반 여성의 심리적 불안과 방황을 소재로 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춘기를 훌쩍 지난 스물여섯 나이에 사춘기를 겪고있는, 소녀라고 하기보단 숙녀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저자가 솔직하고 발랄한 방랑기라는게 더 어울리는 설명이다. 참 솔직하다. 부끄럼 없이 내면을 발랑 까서 보여준다. 그러기에 읽기에 편하고 내가 마치 또래의 여자가 되어 수다를 떨고있는듯한 착각마저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열장정도 읽어나갈때는 냉소적이었다. 참, 이런 신변잡기를 가지고도 책을 내는구나~ 교훈도, 지식도 없고, 그냥 젊은 여자의 일기장 정도 내용인데... 했었다. 그러다 슬슬 달리 보이기 시작한게 글속에 뼈가있고, 냉소적인 허무주의가 은근 공감이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냥 젊은 여자의 일기장이 아니라 놀랍도록 솔직한 자기고백이요, 게다가 글쓰는 재능도 놀라웠다.
모름지기 프롤로그란 이런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할 말이 없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성장하지도 않았고 더 나은 내가 되지도 않았다. 이 글을 처음 쓴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스타벅스에 혼자 앉아 잡생각을 하고 잘생긴 남자를 훔쳐보며 산다. 아니, 어쩌면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문창과 편입 시험에 낙방했고 각종 공모전에서 탈락했으며 통장 잔고는 바닥을 쳤는데 나이까지 먹었다. 나의 일상은 여전히 권태롭기만 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공감가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어떤 책이든지 작가가 전하는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그 책을 쓰면서 한단계 성장할수 있었다며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돌린다. 책이 대박을 쳐서 살림에 보탬이 된다면 모를까, 책 한권 출간한게 얼마나 자신에게 득이 될까 싶다. 책을 낼때마다 한단계 발전했다면 열권쯤 책을 낸 작가들은 모두 성인의 경지에 올라섰을까?
저자는 명로진 작가를 존경한다고 했는데 명로진 작가가 했다는 말을 옮겨본다. 딱 이 말 한마디가 저자의 글쓰기 멘토가 된듯 싶다. "지금까지의 작가는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나는 예술가'라는 자랑스러운 계급장을 단 채, 알콜과 실연과 담배 연기속에 조사 하나를 쓰기 위해 밤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반면 인디라이터는 통과해야할 관문은 생략하고 계급장 따위는 떼어 놓은 채 즐겁고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말에 따르면 정식 루트를 통해 등단하지 않고, 재미로, 취미로 글쓰기를 하면서 자기만족하는 많은 이들은 인디라이터 라고 봐야하겠다. 아마츄어 작가들, 블로거들은 알콜과 실연과 담배연기속에서 계급장을 쟁취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글을 쓸수 있는 특권층인 셈이다. 저자가 존경한다는 선배 김점선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다. 나는 글 장난 전문가다. 나는 글 영역 확대 작업 노동자다. 나는 언어를 마음대로 찢어발길 자유를 부여받은 언어왕국의 왕자다. 나는 아무렇게나 언어를 파괴해도 된다. 그것이 언어에 힘을 부여하고 잘살게 하는 길이다. 언어는 그렇게 엄청난 가변영역을 숨긴 채 허약한 모습으로 가장하고 우리 앞에 서있다" 고로 나는(저자 이주윤) 즐겁게 언어를 찢어 발기련다!
딱 위 문구에 기초해서 저자는 글을 썼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하고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토해낸다. 그러다보니 글에 개성이 묻어나고, 근엄하지 않고 재기발랄하다. 그래서 더 친근하다. 이런 이가 어찌 간호사란 직업에 가려 이제껏 살아왔나 모르겠다. <숙녀발랑기>야 자전적인 에세이지만 글쓰는 재능으로 봐서는 소설을 써도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올법한 친구다.
남성 독자들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않겠지만 여성 독자들에게는 꽤 공감을 형성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요즘 화두가 되고있는 '불안한 청춘'은 베이스로 깔고 있고, 이십대 여성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인 연애, 결혼, 취업, 친구, 가족에 대한 고민과 불안을 털어놓는다. 일을 하는 목적은 새옷과 신발, 폼나는 저녁식사를 위해서고, 점심은 굶어도 스타벅스에서 커피는 마셔야 한다. 부모님의 간섭과 잔소리가 싫어 독립해서 나와 살고있다. 나이는 먹었어도 여전히 철이 없다. 근데 저자도 알고있나 보다.
일러두기.
1. 본문에 나오는 이주윤이라는 인물은 저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엥? 실명이 아니었어?
2. 블로그 느낌을 살린 글들이 있습니다. → 어쩐지.. 이것도 컨셉이었구나~
....
5. 외래어와 특정 상호의 잦은 언급은 일부러 그랬습니다. → 후식으로는 Family mart에서 Chocolate milk를 Take out 했다. 이런 표현과 더불어 스타벅스라는 상호가 수십차례 언급되고 있다~
6. 여전히 철이 없지만, 진짜 철없던 시절의 글들은 진짜 철이 없습니다. → 알고 있구나~ ^^; 그래도.. 멋지다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재밌는 부분이 많다. 위에서 소개한 '일러두기'도 보너스 재미를 주고있고, 프롤로그도 식상한 글들이 아니다. 에필로그가 없는 대신 제목 작명에 관한 에피소드로 끝맺는다. 매 우측 페이지마다 잘린 사진을 삽입했는데 촤르륵~ 빨리 넘기면 동네 길을 걸어가는 느낌을 살릴수 있다. 저자뿐만 아니다. 출판사도 예사롭지 않다. '퍼플카우'라는 곳인데 아마츄어 작가들에게 출판의 기회를 주려 노력하는 출판사인가 보다. "베스트셀러가 될때까지 검은 머리 '퍼플'이 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라고 한다. 이런 시도는 참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출판업계는 재능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할수 있고, 아마추어 작가들에게는 출판의 꿈을 실현시켜줄수 있을테니까. 나같은 독자들은 그 와중에 이런 재능있는 작가들의 톡톡 튀는 재밌는 글도 접할수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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