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던터라 많은 분들이 '잡년행동'이란 단체가 근로자의 날에 벌였던 명동에서의 거리 퍼포먼스에 대해 잘 아실거라 생각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역시 언론은 선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데 지면을 할애했고, 마지못해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게 뭔지, 슬럿워크 운동이 뭔지 살짝 맛배기만 보여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그 기사를 당일날 인터넷을 통해 봤었고, 그냥 지나쳤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한국의 시위문화에 일종의 기념비적인 전례가 아닐까 싶어 내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일단 그 날의 퍼포먼스부터 살펴보자.
5월 1일 명동 한복판에 범상치 않은 시위대가 등장했다. 많은 여성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들고온 집회 소품부터가 눈길을 끈다. 많은 행인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들자 본격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졌는데 깜놀~ 다짜고짜 브래지어를 풀어 헤치는 퍼포먼스.
그리고는 풀어헤친 브래지어를 묶어 줄을 만들어 줄넘기를 했다. 몰려든 사람들에겐 좋은 '눈요깃감'이 됐겠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둘러싼 억압과 편견을 풀어버리고, 뛰어넘음으로서 여성이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대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겠다는 뜻 아닐까 생각해본다.
거기까지는 좋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주체는 나에게 있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대상물이 아니다!완전 공감한다. 그리고 지지한다. 그런데 잡년행동이 이날 주장하고 요구하는 구호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들이 많다. 가부장제 폐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지불, NO 브라, NO 메이크업, NO 하이힐!
가부장제는 해체되고 있다. 간통죄가 폐지됐고, 호주제도 폐지됐다. 이혼시에도 부부의 재산은 반반이 원칙이고, 자녀의 성도 아빠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다. 4,50대 이상이라면 그런 주장들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지금 10대를 비롯해 2,30대에도 과연 가부장제가 유지되고 있고, 가정과 가족간의 여성차별이 존재하고 있을까? 물론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내 주위 부부들을 보면 아내 목소리가 크고, 가정이 엄마 중심, 아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건 어렵지 않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라고? 누구한테 요구하는 건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요구하려면 국가가 존속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을 유지하는 대가로 정부가 주부들에게 노임을 지급해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고 남편들을 상대로 가사노동비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떤 남성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내가 한달동안 상사 눈치보며, 아둥바둥 일해서 버는 돈이 250만원이다. 그런데 아내가 집에서 살림하느라 힘들다고 150만원을 지급하라고 하면, 그럼 내가 한달동안 일한 노동의 댓가는 100만원 어치란 말인가?
언젠가 여자들이 화장하는 이유는 남자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혹은 사람들에게 예뻐 보일려고 하는것이다~ 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온 적이 있다. 그러자 분개한 수많은 여성들이 댓글을 통해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가 화장하는건 다른사람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다!" 마찬가지로 미니스커트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것도 남자들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입음으로서 자기만족과 자신감을 위해서라고들 주장했다. 정말? 그럼 여자들끼리 있는 곳이나 집에만 있을때도 예쁘게 공들여서 화장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는건가? 자기 만족을 위해서? 그래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날 잡년행동이 주장하는 NO브라, NO메이크업, NO하이힐 구호를 보면 속옷을 입지 않을 권리, 화장을 하지 않을 권리, 하이힐을 벗어 던질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힌다. 언제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스스로 하는거라고 하더니 이젠 남성들에 의해 강요된 행동들이란다. 화장 안하고, 속옷 안입고, 하이힐 안신으면 되잖아. 그런데 이 사회가, 남성중심적인 이 사회가 여성들을 그렇게 안할수 없게 몰아간다고? 남자들이 예쁜 여자만 좋아하니까? 그건 남자든 여자든 똑같다. 여자들도 키크고, 돈많고, 능력있는 남자들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조건이 안되는 남자들에겐 이 사회가 너무나 버겁다... 이건 슬럿워크 운동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한국에서 5월 1일 펼쳐졌던 '잡년행동'의 퍼포먼스에 관한 생각이다.
슬럿워크 운동은 2011년 캐나다에서 처음 생겼다. 한 대학의 안전교육 강연에서 경찰관이 "성폭행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 같은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라고 발언을 한 이후에 여권운동자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성이 스스로 '야하게 입을 권리'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2011년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슬럿워크 코리아가 결성되었다. 가해학생들이 설문지를 돌려 피해 여학생의 처신이 올바르지 못해 성추행을 유도했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려대 졸업생 및 여성단체에서 1인시위가 빗발쳤는데 아래 사진이 한국판 슬럿워크 운동이 뭔지 잘 대변해주고 있다.
문제 : 다음 보기중에 성폭행(성추행) 해도 되는 여성은?
1.술취한 여자 2.야한옷입은 여자 3.MT가서 술먹은 여자 4.밤길에 만난,꼴리는 여자
정답은 '당근' 없다 이다. 하지만 고대 의대 가해 남학생들이나 일부 보수적인 남성들, 또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은 성폭행 당한 피해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으니 당한거 아니냐~ 그러게 평소 몸가짐을 바로 해야한다~ 라는 경향도 있다. 이를 바로잡고자 정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가 '잡년행동'이다. 이름이 과격해서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아마 슬럿 워크를 한국말로 고의로 직역한 의도로 보인다. 슬럿(slut)이 우리말로 매춘부를 뜻하기도 하고, 영어사전에는 '난잡하게 놀아먹는 계집, 잡년' 이라고 해석되어 있기도 하다. 워크가(walk) '걷기', '행진'을 뜻하니 슬럿워크를 '잡년행동'이라 칭한 셈이다. 작년에는 거리행진이 있었다. 그게 올해는 더 표현력이 과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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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럿워크 운동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야 겠다.
다시 슬럿워크가 시작된 캐나다로 돌아가 보자. 위에서 언급했듯이 캐나다 한 대학교에서 여성의 안전에 대해 강연하던 경찰관은 "성폭행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 같은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틀렸을까? 이 말을 뒤집어서 두가지 버젼으로 만들어 보자.
2. 매춘부 같은 옷을 입으면 성폭행 당해도 된다.
캐나다 경찰관은 1번 의도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인 여권운동자들은 2번으로 해석했다. 그러니 슬럿워크 운동이 일어난것 아닐까? 우리는 운전을 배울때 '방어운전'이란 개념을 배운다. 교통사고라는게 나 혼자 운전 잘하고, 법규 잘 지킨다고 안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잘 했어도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량이 졸음운전을 하거나, 딴 짓을 하거나, 나를 못봤거나 했을때는 사고가 날수 있다. 꼭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 뿐만이 아니다. 그래서 안전거리를 충분히 유지하고, 앞 차가 급정거를 할때는 비상등을 켜서 뒷차에 위험을 알리고, 사고 다발지역은 의식적으로 서행하면서 주위를 살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슬럿워크 운동을 운전에 비유하자면, 내가 운전법규만 잘 지키면 되지, 왜 상대방 운전까지 고려하고 신경써야 하는가! 하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건 내 몸이다. 내몸은 내 마음대로 한다" 라고 주장한다.
범죄심리학 박사인 이수정 교수(경기대)는 "야한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정상적인 남성이라면 야한 옷차림의 여성을 보고 성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억제력에 달린 문제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여성들의 야한 옷차림을 보면 정상적인 남성들은 성욕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성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자제력이 약하거나,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거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에 적지않다는게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 잠재적인 성범죄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야하게 옷을 입을 권리, 내몸을 내맘대로 할 권리,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성범죄에 대비하자는 거다. 밤 늦은 시간에 혼자서 으슥한 곳에 가지마라고 조언하는 사람에게 내맘이야, 상관마! 하고 외치는게 진정한 여권운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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