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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바보

내가 일하고 있는 섬마을엔 바보가 한 명 있다.

섬이다 보니 병원이 있는것도 아니고, 긴급환자라도 배시간 맞춰서 두시간 배타고 나가야 동네병원에라도 갈수 있는곳이니, 어렸을적 많이 아팠다가 제때 병원 치료를 받지못해 바보가 되버렸다는 얘길 동네 어른들한테서 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 마을을 돌아다니니 쉽게 볼수가 있는데 어찌나 체력이 좋은지, 차를 타고 현장엘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산너머 마을에서 좀전에 봤었는데 어느샌가 산을 넘어와 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다 또 어느샌가 저마을에 건너가 쓰레기를 뒤지고 있고, 또 잠깐 안보인다 싶으면 공사현장 인근에서 지나가는 차 앞을 막아서며 알아들을수 없는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말도 못하고,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한다.

 

첨엔 무서웠다. 뇌성마비 기운도 있는지 얼굴 근육이 굳어서 인상도 험악했고, 느닷없이 길을 걷고있으면 다가와 앞을 가로막는가 하면, 차를 타고 지나가도 두팔을 벌려 차 앞을 막아서기도 했으니 처음 이 바보를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겁을 했을까. 그런데 좀 지내다보니 그리 위험한 인물은 아니라는걸 알게됐다. 그냥 무시해 버리기도 하고, 또 가끔은 "저리가!" 하고 큰소리로 쫒아 버리기도 하고 하게됐다. 옷은 남루하고 얼굴엔 때국물이 흐르고, 항상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고 해서 건강에 문제가 있지않나 싶었는데 돌봐주는 이가 있는지 밥도 굶지않고, 가끔은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비가 올땐 보이지 않고, 또 무엇보다 겨울에는 돌아다니지 않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어김없이 나와서 돌아다닌다. 알고보니 노모와 함께 살고있다고 한다. 나이도 마흔이 훌쩍 넘었다는데 지적 연령은 3~4세 수준으로 보인다. 비쩍 마른 몸매에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장사가 따로없다. 저런 아들을 둔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아플까. 또 저 바보는 무슨 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걸까. 하는 생각에 불쌍하다고 동료들과 얘기를 나눴었다. 며칠전 추운 겨울 또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던 바보가 날이 풀리자 공사현장에 나타났다.

 

 

어디선가 쓰레기를 잔뜩 주워와서 열심히 뭔가를 하고있다. 그러고보니 이 바보는 항상 바쁘다. 쓰레기를 뒤지고 있거나, 어디서 쓰레기들을 잔뜩 모아오거나, 이동네 저동네 바쁘게 걸어다니거나 잠시도 쉬지않고 몸을 움직인다. 그래서 그렇게 건강한가보다. 또 하나 가만 생각해보니 항상 웃고 다닌다. 낯선 사람이건, 어른이건 아이건 간에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 워워~하며 동물같은 소리를 내며 말을 걸고 웃는다.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까 하고 불쌍하게 여겼었는데 어느날 가만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 바보는 자신만의 세상에선 가장 행복한 사람일수도 있겠다 싶다. 걱정거리 없고, 고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 학교를 다닐까, 직장을 다닐까 그저 자기가 하고싶은 일은 뭐든 하면서, 가고싶은 곳은 맘대로 가고, 또 보살펴 주는 어머니가 있고, 하루하루를 나름 즐기면서 살고 있는건 아닐까?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 안에서 볼때는 한심하고, 쓸모없는 바보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기준이 아닌 바보 자신의 기준으로 놓고보면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고있는것일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짧은 순간이나마 저 바보가 아주 살~짝 부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