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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비빔밥? 소밥?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정네라면 전투식량으로 보급된 일명 '소밥'을 아실 것이다.
물만 부워 전자렌지에 덥혀 먹으면 방금 한 새밥맛을 보여준 전국민의 '햇반'보다 수십년
앞선 기술력을 보여줬던 전투식량.
비록 전자렌지가 없더라도 물만 붓고 기다리면 부피가 3배정도 커지면서 그럴싸~한
한끼 밥이 탄생했더랬다. 지금 사회인의 기준으로 본다면 유통기한 한참지난 재료에
알수없는 화학첨가물로 범벅이 된 '불량식품'이지만 그래도 군시절엔 맛있는 별식이었다.

4~5종의 전투식량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게 바로 '소밥'이라 불리던 비빔밥.
둘이 먹어도 배부를만큼 많은 양에 라면스프로 밥 비벼 먹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전투식량들에 비해 맛있게 먹을수 있었다. 잠깐 군대이야기 한토막.

맨 처음 입대하고 배치되는 신교대-신병교육대-에서는 짖궂은 고참들이 신병들을 골탕먹이려
소밥을 지급하고 나서 눈을 부라리며 '남기지 말고 다먹을것'을 명령한다. 처음엔 조그마한
비닐봉지 속에 든 밥이 뭐 대수롭나 싶어 호기롭게 군기 바짝든 목소리로 "예, 알겠습니다아~"를
복창하지만 막상 뜨거운 물이 들어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풀어오르는 봉지에 신기할
뿐이다. 이윽고 밥이 다 익으면 각종 스프들을 넣고 열심히 비비게 되는데 2~3인분은 넉넉할
정도로 양이 불어있다. 고참들이 무서워 꾸역꾸역 먹어보지만 끝내 두세명은 다 먹지못하고
호랑이같은 고참들의 얼차려에 눈물 쏙 빼면서 입속에 밀어넣던...그 추억의 전투식량. 

지금은 제대한지 15년이 넘어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뜬금없이 군대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지난주말 집에서 15년만에 '소밥'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격주말 부부로 살고있는 우리부부~ 그래서 지난주말 2주만에 집에 갔는데 우리 영부인께서
나름 정성들여 만들어 준 비빔밥을 점심 메뉴로 내왔다. 거기까진 좋은데 그 양이...양이...
저리 사진찍어 놓으니 별로 모르겠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어른 두명이 충분히 먹을만큼..
그런데 우리집에 어른이라곤 우리 부부 둘뿐인데 참고로 아내는 밥을 먹지않는다.
밥을 안먹고 어찌사는지 신기하지만 어쨋든 밥을 안먹는다.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하기로하고,
결론은 저 밥을 나혼자 먹어야 한다는것. 남기면 되지 않는가? 안된다.
차려준 밥을 남길 경우에 돌아올 폭풍을 생각한다면 결코 남기지 않고 다먹는 것만이 가정의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신혼초부터 우리집은 내기준으로 좀 이상한 식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내 기준이라 함은 보통 아내들이 남편 입맛에 맞춰 음식을 하고, 오손도손 같이 먹고, 하는것을
말하는데 우리집은 음식의 간이나, 메뉴등이 철저히 아내위주로 짜여있다. 
결코 잊을수 없는 메뉴가 콩나물국이다.
콩나물국을 끓여 내온후에 "어때, 맛있어?"하고 물어오길래 내 딴에는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응, 맛있어. 그런데 좀 싱거운것 같다"라고 얘기한적 있다.
"별로야? 오빠 입맛이 이상하다~ 음식은 싱겁게 먹어야 돼. 우리집은 이렇게 먹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인데...맛없으면 먹지마" 돌아온 답변. 그런데, 그런데, 그 콩나물국이란게 맹물에
말 그대로 콩나물만 넣고 끓인후 싱겁게 간을 한 '맹탕국'이었다. 뭐 보통 국을 끓이면 넣게되는
다진 마늘이나, 양파, 파, 뭐 이런거 있지않은가, 그런게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그냥 물하고
콩나물하고 소금만 넣어 끓인국. 그것도 아~주 싱겁게...
그 뒤로도 콩나물국은 가끔씩 나온다. 하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철저히 아내 입맛에 맞춘
'맹탕 콩나물국' 그대로..

그리고 또 하나 고역인게 밥 양인데, 어찌나 손이 큰지 본인은 식사를 안하면서 내 밥은
머슴밥을 차려준다. 다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 남기기라도 할라치면 "남자가 입이 짧다"며
구박이다. 내가 알기론 "입이 짧다"란 표현은 입맛이 까다로워 이음식, 저음식 깨작거리는
'까탈스러운' 식성을 나타내는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아내에게는 많이 먹지 못하며
"입이 짧은"거다.
비엔나 소시지건 치킨너겟이건 한접시 가득 해와선 다 먹으란다. 반찬이 아니고 주식 개념이다.
그런데 또 밥은 밥대로 고봉이고~ 그래서 자주 남기게 되는데 남는밥은 버리게되고...
결혼 6년째인데 어찌된게 밥을 차려줄때마다 지금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알맞은 양을 주면 안되는걸까? 같이 식사할 기회가 많지않아 바로바로 잊어버리는걸까?
결국...꾸역꾸역.... 마지막엔 아내가 혀를 차며 "남자가 이것도 하나 다 못먹어?"하며 도와준 덕분에...




 

짜잔~ 성공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눈물 겨운 인간승리다... ㅠ.ㅠ
오늘도 우리 아내 나를보며 배나왔다 구박한다. 
"여보 점심 맛있게 잘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