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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미치다

김진우 복귀를 다룬 언론의 깨방정




28일, 기아의 김진우가 조범현 감독과 면담을 갖고 기아3군과 함께 훈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31일 광주 무등경기장을 찾아 훈련중인 기아 선수단과 인사를
나눴다. 스포츠신문을 포함한 언론들은 이에맞춰 28일부터 31일까지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 한결같이 핑크빛 전망에 마치 기아가 2011년부터는 예전의 투수왕국이
재현될 것처럼 설레발 치고있으니 참 한심할 따름이다.
김진우 3군훈련 참여가 마치 기아복귀 → 선발투수 진입 → 제2의 선동열로 부활
→ 기아 투수왕국 재현 → 강력한 우승후보 로 발전해 나가는 모양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제목만 추려보자.

KIA '투수왕국'재건 청신호 "해태시절 명성 되찾나"    스포츠서울(2010.8.30)
KIA, 최고 평균 150km.. 꿈의 광속선발진 완성할까    스포츠조선(2010.8.30)
KIA 넘치는 토종선발, 로페즈-콜론 딜레마             OSEN스포츠(2010.8.30)
선발왕국 꿈꾸는 KIA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                엑스포츠(2010.8.31)

이 기사들의 공통적인 내용들은 수술후 복귀가 임박한 한기주와 김진우가 내년 선발진에
합류한다는 가정하에 윤석민, 서재응, 양현종, 한기주, 김진우 로 이어지는 토종 5선발진은
8개구단 최고의 선발진을 구성할수 있고, 이들중 한명이 불펜으로 가더라도 로페즈나
콜론 둘중 한명을 계약포기하고 거포 타자를 영입할수 있어 전반적으로 팀전력이
급상승한다~는 내용이다. 아직 정식으로 복귀한 것도 아니고
기껏 김진우가 3군훈련에 동참한다는 기사가 너무도 비약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한켠에선 김진우가 보여왔던 그간의 '트러블 메이커' 이미지로 다소 부정적인
시각도 있긴하지만 대부분의 언론과 뉴스들은 내년시즌 김진우가 기아선발진의 핵으로
떠오를 것이라는걸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난 이 부분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김진우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준
기아구단의 결정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팀 전력 측면에서는
김진우가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할거라는 생각이다.
먼저 기아팬들은 김진우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성적만을 기억하며 그가 복귀하면 당장
예전의 슈퍼스타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를 하고있다. 여기서 김진우의 통산성적을 살펴보자.

광주 진흥고 시절 류제국과 함께 아마야구를 평정하며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기도 한
김진우는 단연 아마 최고의 유망주였다. 튼튼한 체격조건, 아마야구를 넘어선 광속구와
커브를 바탕으로 기아는 당시 최고액이었던 7억의 계약금을 주고 영입했고, '제2의 선동렬'
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리고 그해 2002년 12승11패 로 입단 첫해 10승을 돌파하고,
177개의 탈삼진으로 탈삼진왕을 차지,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에 일조하며 군면제까지 획득한다.
그야말로 탄탄대로, 10년간은 기아 마운드를 책임질 대들보로서의 등장이었다.
이듬해 2003년 부터 사생활 문제로 삐걱대기 시작했는데 술 마시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훈련량이 부족해졌고, 또 일반인과 폭행시비를 벌이면서 악동 이미지가 굳어졌다.
하지만 성적은 11승5패 로 여전히 '야구 하나만큼은 최고'로 인정받는다.
2004년  7승2패 로 기대에 못미치면서 퇴보하기 시작한 그는 2005년 6승10패 로 승보다 패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6년 10승4패 로 다시 10승 투수로 진입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2007년 갑자기 찾아온 제구력 난조와 훈련부족, 사생활 문제로 인해 시즌 개막을 2군에서
시작했다가 1군 5경기, 1승2패 방어율 8.35를 끝으로 임의탈퇴 당했다.

특히 2007년의 경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일명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의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제구력에 문제점을 드러냈고, 2군 훈련도중 야구를 포기하겠다며 팀을 이탈했었다.
그리고 그후로도 계속되는 언행불일치...
야구를 계속하고싶다며 기아구단에 받아달라고 사정했다가 막상 훈련을 지원하면 버티지 못하고
잠적을 되풀이했고 그러면서 경찰청, 진흥고, 동강대, 송원대를 전전하며 개인훈련을 하다말다를
반복해왔다. 운동선수가 그것도 투수가 3년을 넘는 시간동안 제대로 체계적인 훈련을 하지
못한점은 치명적 결점이다. 또한 이제 마음을 바로잡고 열심히 몸을 만든다 한들 야구를 그만두게한
원인 중 하나였던 제구력 난조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의문이다.
스티브블래스 증후군은 자기 의지나 훈련 여부와 상관없이 이유를 알수없는 희귀현상이다.


(사진 및 글 출처 시골행원님의 블로그)

 1971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투수였던 스티브 블래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만난 월드시리즈에서
혼자 2승을 거두며 피츠버그의 우승을 이끌어 영웅이 되었고, 이듬해인 1972년에는 19승에
방어율 2.49를 기록하며 최고투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973년 스티브 블래스는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몸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훈련도 정상적으로 소화했으나 실전에만
투입되면 볼을 패대기 치는 투수로 바껴버린 것이다. 그해 3승9패에 방어율 9.85를 기록했고,
88이닝동안 84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이 원인모를 제구력 난조를 극복하러 심리치료, 명상요법등을 시행해 봤으나 끝내 치료되지
않으면서 그렇게 야구계에서 은퇴했다. 오늘날 스티브 블래스는 찬란했던 1971년이나 1972년의
영웅적인 투수로 기억되기 보다는 '원인모를 제구력 난조'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한참 좋았을때인 2002년과 2003년 김진우의 트레이드 마크는 튼튼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150키로를 웃도는 위력적인 직구와 폭포수 커브였다. 그러다 2007년 가장 큰 장점이었던 직구의
제구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근근이 커브로만 버티다 통타당하고 야구계를 떠났었다.
3년을 쉬고 다시 운동을 시작한 그가 과연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극복하고
제구력을 되찾을수 있을것인가.
그리고 제구력을 되찾는다 한들 7~8년 전처럼 위력적인 볼을 던질수 있을 것인가.
그간 계속해서 그를 괴롭혀왔던 술과, 주위의 악플과, 사생활 문제를 앞으로는
잘 절제할수 있을 것인가.

그 대답은 김진우 본인이 쥐고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
되야함은 물론이다. 한가지 희망적인건 이제 불과 그의 나이 20대 중반이라는거다.

서두에서 나는 앞으로의 김진우 피칭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본바있다. 하지만 그가 복귀해서
비록 예전처럼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젊은날의 방황을 끝내고 타이거즈
선수로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난 대만족이다. 제발 그렇게 되길 바란다.
기아 구단을 위해서도,
그를 받아들인 팬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앞으로 남겨질 '김진우' 란 이름 석자의 의미를 위해서도 말이다.
스티브 블래스 처럼 최고투수 였음에도 제구력 난조의 대명사로 남느냐..
김진우란 이름이 여러 방황과 난관을 끝내 극복하고 최고투수로 기억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