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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흥미로운 고려사, 공민왕의 이야기 [신돈의 나라]




일전에 인터파크 헌책방에서 책을 대량구입했던 내용을 포스팅 한적 있다.



두차례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하면서 역사에 흥미를 갖고있는 터라 천추태후, 열하, 신돈 관련책들을 
구입했었는데 그중 첫타로 가장 흥미로울것 같던 '신돈의 나라'를 읽었다.
저자는 황정일,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고 졸업후 신문기자 생활을 잠깐하다 이 '신돈의 나라'가
처녀작이라고 한다. 네이버 인물검색을 해보니 꾸준한 창작활동을 하는
다작 작가는 아닌듯 싶다. 외서를 번역해 몇권 더 출간했으나 
역시 대표작은 이 작품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듯 보인다.
그런 그가 고려사를 통틀어 어찌보면 가장 흥미로운~ 사건을 소재로 책을 펴낸것이다.
공민왕과 신돈, 노국공주, 내관 최만생, 자제위의 홍륜...

2005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MBC에서 방영했던 사극 '신돈'을 기억하는가?
정보석이 공민왕으로, 손창민이 신돈으로, 서지혜가 노국공주로 연기한 작품이었는데 당시에도 재밌게
봤으나 극구성이 왠지 짜임새가 없고 결말이 다소 황당하여 크게 인기를 얻은 작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내가 알고있던 공민왕은 국사시간에 잠깐 다뤘던 원나라에 대항하여 반원정책을 펴서 
그때까지 고려 내정을 간섭하던 정동행성을 폐지하고, 말총머리 변발을 금지시키고, 원나라의 문화를
몰아낸 자주적이고 강건한 고려말 왕이었다. 간혹 내시 최만생이니, 암살 당했다느니, 신돈이란 요승을
총애해 국정을 어지럽혔다느니 하는 말들을 곁가지로 들어왔지만 그다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
그러다 2005년 드라마 '신돈'을 봤고, 2010년에 소설 '신돈의 나라'를 읽으면서, 오히려 소설을 읽기전보다
읽은후에 더 관심을 가진 왕이 되버렸다. 공민왕...정말 재미있고, 스릴있는 역사다.



소설 '신돈의 나라'

저자 황정일의 처녀작이라고 하나 어설프지도 과하지도 않은 작품이다.
서두에 공민왕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역사에 등장한 실존인물이지만 내용은 작가가 꾸며낸 픽션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읽어나가다보니 세세한 심리묘사들이야 픽션이겠지만 역사적 사실이나, 과정들이
모두 사료를 근거로한 논픽션에 가까웠다. 특히 글을 이끌어나가는 구조가 사서를 기초로 객관적인
사실들을 다큐멘터리식으로 풀어나가 픽션이라고만 보기 힘든 소설이다.

공민왕이 태어나고 자라온 시대적 배경, 반원정책의 과정, 신돈과의 만남, 노국공주와의 사랑, 권문세가나
친원세력과의 갈등, 자제위를 만들고 미소년들과의 동성애, 그리고 신돈과의 불화와 숙청, 본인의 암살..
등의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다. 처녀작 답지않게 참 
차분하게 글을 잘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나 제목은 신돈이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공민왕이고, 등장인물들의 역사적 배경 설명이 얕아서
어느정도 시대적인 지식을 갖고있는 사람들은 쉽게 읽을수 있지만 전혀 모르고있거나 공민왕
이야기를 처음접한 사람들에게는 세부적인 배경설명이 아쉽다.
또한 순수픽션 소설들이 흥미를 위해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배배꼬고 얼키고 설킨 구조를 만들어
위기감을 고조시키다가 작가 자신이 그 복잡한 구도를 명쾌하게 풀어서 해답을 내지못하고 허무하게
"어처구니 없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악당이 죽고,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식의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 역시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에 너무 빠른 마무리를 지어내
독자를 황당하게 만드는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 재미있게 읽고있는데 갑자기 신돈이 죽고,
신돈의 죽음을 공민왕의 입장에서 좀더 설득력있게 설명해주려나 하는 마음으로 뒷장을 읽는데,
그런 충분한 설명없이 또 갑자기 공민왕이 죽는다. 그 이후 공민왕의 죽음 또한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지 못하고...그 부분이 아쉽다.

그리고 그 신돈과 공민왕의 죽음을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 탓에 책을 읽고난 후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게 되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더 재밌는 사실들을 알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 소설을 표현하자면 "읽을때보다 읽고난 후가 더 재밌는 역사소설" 이라고나 할까?

허나 여러번 언급했듯이 소재 자체가 고려역사상, 아니 어찌보면 고려, 조선사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소재이기에 기본적인 재미를 먹고 들어가거니와 작가가 처녀작답지 않게 차분히 글을 이어나가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수 있었다. 
자...이제 '신돈의 나라'를 읽고 난 후 뒷이야기를 풀어보자.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

먼저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고려말 상황부터 살펴보자.
중국은 몽고족이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대원제국을 건설한후 고려를 침략해 속국으로 삼았던 
원나라 말기가 배경이다. 고려의 반기를 막기위해 왕자를 볼모로 잡는 제도탓에 
공민왕도 어린시절을 원나라에서 보냈고, 원나라 귀족딸이던 노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하게됐다. 
그러나 노국공주는 원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의 자주의식을 일깨워주며,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했고, 황제에 건의해 공민왕을 고려왕으로 선임하는데
 일조를 한다. 왕이 된후 고려로 돌아온 공민왕은 홍건적의 발호로 쇠약해진 원나라에
반기를 들고 내정을 간섭하던 정동행성등의 관청을 폐지하고, 변발을 금지하는등 원나라 문화를 배척했고,
최영장군등을 통해 고려 북방 영토를 수복하는등 반원자주정책을 펴며 원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썼고 노국공주는 그런 공민왕의 편이되어 
정치적, 가정적에서 후원자이자 동료이자 부부의 사랑이 깊어져갔다. 

그러나 개혁에는 반발이 있듯 그간 수십년간 원나라의 편에서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던 
친원파와 권문세가들의 저항에 맞서게 되는데 편조라는 중을 내세워 전권을 위임하고 개혁을
진행해 나간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편조 세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부정부패를 몰아가던
차에 노국공주가 회임을 하고, 애를 낳다가 죽고만다. 이 사건 이후로 노국공주를 너무나 사랑하던
공민왕은 식음을 전폐하고 국정을 돌보지 않으며 술로 세월을 보내고, 죽은 노국공주를 위해 대공사를
일으키며 국고를 탕진하는등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그러자 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하던 신돈의 힘이 약화되었고, 그 기회를 틈타 친원파와 권문세도들이 공민왕과 신돈 사이를
이간질하며 신돈이 막강한 권력을 토대로 역모를 꿈꾸며 스스로 왕이 되고자한다고 고하여
이미 총기를 잃은 왕이 신돈을 처형하게 된다. 

왕이 신돈을 믿지못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신돈의 서경천도 주장이었는데 
신돈의 입장에선 왕권을 강화하고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서울에 땅과, 노비와 
경제권을 독차지한 권문세가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했고, 가장 좋은방법이
서경천도라는 생각이었는데 반해 공민왕은 서경으로 천도할 경우 노국공주의 묘와 멀어진다는
생각에 반대를 한것이고 이 틈에 권문세가들이 왕의 편에 서며 신돈이 신임을 잃게 된다는...
이부분은 사실 많은 사가들의 생각과도 일치하지만 완벽한 진실이라기보다 작가의 픽션이 가미된
부분이라 보인다. 아뭏튼 이시기의 공민왕은 이미 완벽한 군주의 모습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국정을 돌보지 않으며 방황하던 시기라 총기가 흐려져있었다 보인다.
결국 신돈을 역모죄로 처형하라는 신하들의 주청에도 신돈을 사부로 모시던 왕은 죽음만은 면해주고
수원으로 귀향을 보내는데 귀향지에서 신돈은 최후를 맞게된다. 
소설에서는 자객에 죽음을 당한것으로 처리했더라..

이 시기 공민왕은 실로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었는데 노국공주가 죽은후 슬픔에 젖어 후궁들을
찾지않고 지내다 동성애의 경향을 띠게 된다. 그래서 귀족들의 어린 소년들로 자제위라는 
친위대를 구성하고 항상 곁에두며 침전으로 불러들이면서 여자가 아닌 소년들과 잠자리를 하게
되는데 결국 이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자초한 셈이다. 


공민왕 암살의 진실은 무엇일까?


여기서부터 공민왕의 암살문제를 살펴보자.
공민왕의 죽음 배경에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가 여자에 관심을 잃은 공민왕이 후계구도를 위해
자제위 소속 소년들로 하여금 후궁과 관계를 갖게하고 임신을 한후 자기 아들로 속이려고 
사실을 아는 관련인들을 죽이려 했는데 내관 최만생이 이사실을 자제위에 알려 
최만생과 자제위가 함께 공민왕을 시해했다는 설이다.

당시 후궁으로는 혜비, 익비, 정비, 신비가 있었는데 공민왕이 처소를 찾지않자 후사가 끊길 위기에 
처했고, 공민왕은 자제위의 홍륜등과 함께 후궁 처소에 들어 합방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혜비, 정비, 신비는 끝내 거절하며 지조를 지킨반면 익비는 공민왕이 칼로 위협하자 공민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제위의 홍륜과 동침을 했고, 이같은 일이 반복되다 임신을 하게된다.
그러자 왕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로 하기위해 이 사실을 알고있는 측근들인 내관 최만생과 자제위
젊은 소년들을 모조리 죽여 입막음을 하려하는데 이 사실을 눈치챈 최만생이 자제위에 알리게되고
자신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침소에서 자고있는 공민왕을 시해했다는 설이다.

두번째 설은 처음에는 미소년들이었던 자제위 소년들이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됐음에도 여전히
궐내에서 기거하며 왕과 함께 하다보니 그중 홍륜이라는 자가 혈기왕성하여 마침 독수공방중이던
익비와 눈이맞아 간통을 하게됐고 익비가 임신을 하게됐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왕에게 고한
사람이 어의와 내관 최만생 이었는데 왕이 궐내에서 후궁이 간통한 사실에 수치심으로 몸을 떨며
이 치욕스러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최만생과 어의, 자제위 소속 소년들을 모두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이를 눈치챈 최만생이 자제위 소년들과 함께 공민왕을 시해했다는 설.

아마도 첫번째 설은 공민왕을 부도덕한 패륜아의 관점에서 보고 묘사한 설로 보이고,
두번째 설은 좀더 공민왕 편에서 우호적으로 나온 설로 보인다. 어떤것이 진실이라고
누가 말할수 있을까? 역사는 이미 지나갔고 해석은 시대에 따라, 관점에 따라 바뀌는것임을..

소설에서는 두번째 설을 바탕으로 총기가 흐려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공민왕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내관 최만생이 더이상 두고보지 못하고 자제위 홍륜등과 함께 왕을 
시해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진실이야 어떤게 사실이든간에 실로 흥미로운 역사가 아닐수 없다.

역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재밌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드라마도 사극이 더 인기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노국공주와의 세기적인 사랑, 신돈과의 애증관계, 치열하게 원나라에 대항했던 
자주적 인물로서의 공민왕. 노국공주를 잃고 난 말기에 동성애와 방탕한 삶으로
점철됐다가 최측근의 손에의해 시해당한 비운의 왕.
공민왕의 인생 자체가 파란만장하고 흥미로운 역사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