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나름 현대 한국정치 흐름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있다고 자부한다. 그러기에 정치관련 수많은 책들을 탐독했고, 타고난 성향이
중도좌파인지라 서민정당을 지지해왔고, 그러다보니 전통적인 야당지지자에 97년 이후론
절대적인 여당지지자 생활을 해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노란 손수건을 열심히 흔들어댔다. 한국정치의 봄날인 지난 10년이 지나고
다시 야당지지자로 돌아와있는 이때, 정부에서 하는일마다 마음에 드는 일이라곤 눈을씻고
찾아볼래야 찾을수가 없어 울화통만 터지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차에 이번에 새로 나온 신간 김대중vs김영삼 이라는 책을 안 읽을수가 없었다.
어쩌다 성이 같은 김씨라고 3김시대라고 불리지만, 사실 김종필을 김대중, 김영삼과 같은
급에 올려놓고 단순 비교한다는건 역사적으로 무례한 일이다. 김종필이 양김씨처럼 목숨
내놓고 민주화 투쟁을 한적 있나? 이 책은 서두부터 화끈하게 김종필을 제껴놓고 양김만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게다가 어쩜 이리 직설적인 화법인가~ 흔히 정치 이야기를 읽을때면
어찌됐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 위주로 써야함에도 이 책의 저자
이동형은 확인된 정설, 확인되지 않은 야사, 본인의 생각, 기억들을 싸잡아 화끈하고, 통쾌하게
글을 써내려간다. 막힘이 없다. 그러기에 속이 다 시원시원하다.
흔히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에 대해 평을 할때 동교동계 진영에서는 김대중을 주인공으로,
상도동계에서는 김영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혹은 재야입장이나 다른 정치인들은 두사람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책에서는 양비론을 말하는
사람들을 직설적으로 무시한다. 그것도 책의 첫장에서부터.
"한국 정치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협력자,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이자 견원지간인, 어쨋든
이상한 관계인 두사람. 양김정치가 나라를 망쳤네, 어쨋네, 다 웃기는 소리다.
두 양반이 없었으면 민주화는 "아직 오지도 못했다"에 필자가 가진 돈 모두와 손모가지를
건다. 두 사람을 빼곤 한국의 정치문화를 얘기할수 없다" 맞는 말이다. 이들 두사람이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며 서로를 견제하느라 80년대 후반이후 한국정치의 암울한 상황이 90년대까지
지속된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나마 이들 두사람의 힘이 없었더라면 2011년 지금도 어쩌면
한국은 군인들이 통치하는 나라에 머물러 있었거나, 혹은 박정희와 같은 제3자의 독재정권
하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굳이 공과를 따지자면 공이 더 크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김대중 쪽을 더 지지하는데 이것봐라? 책의 서두부터 이들 두 정치인을 평하는게
어쩌면 일방적으로 저자 역시 김대중쪽을 더 좋게 평가하는것 같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김영삼쪽을 가리켜서는 "김영삼 머리 나쁜건 세상이 다 안다" "그 머리로 어떻게
서울대에 들어갔느냐~" "김영삼은 완전 초등수준의 지식밖에 없다~"라고까지 얘기한다.
아~ 김대중, 김영삼 두사람의 이름을 내세워 정치관련 책을 냈지만 저자는 일방적으로
김대중 성향인게로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책을 읽어갈수록 김대중에 대해서도
"거짓말쟁이" 혹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말하는걸 너무나 좋아해 사람들을 가르치려 든다"
는 식의 악평도 나오고, 무엇보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일방적인 평이나 기술이 아니라,
두사람의 업적을 상당히 존중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김대중, 김영삼 두사람의 출생과 어린시절 성장과정등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본격적으로 두사람이
한국 정치무대에 데뷔하는 1950년대 상황부터, 그 유명한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경선,
40대 기수론, 박정희의 독재하에서 민주화 투쟁, 10.26사태, 전두환과 5공화국, 6.29선언, 이후
김영삼의 변절, IMF를 거쳐 마침내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때까지의 약 50여년간의 두 라이벌에
대해 우리가 알고있는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비사를 총망라하고 있다. 그 덕에 평소 안좋은
감정이 더 많았던 김영삼에 대한 평가도 다소 나아졌다. 그래, 못한것이 많아 미워했지만,
그래도 그만큼 잘한것도 많은 사람이었어...
이 책을 쓰기위해 저자 이동형은 수십권의 국내외 두사람을 다룬 책들을 인용했고, 신문기사,
인터뷰를 참고했다. 대표적인 예로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의 혼외정사를 모두 기정사실로
서술하고 있는데, 다른 언론들도 과감하게 말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는 것들을 저자는 대놓고
까발린다. 두사람의 공과를 모두 조명하는 이 책은 상당히 의미있다. 읽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한국 근현대사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도 아니고, 전문 작가도 아닌 저자가
어쩜 이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현대정치를 조명해 나갈수 있는지...참 대단하다.
김대중, 김영삼 두사람 모두 지나온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는 역시 1987년 대선때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점을 든다. 서로 상대를 원망하면서도 역시 본인들 스스로도 부끄러워 하고있다.
김영삼씨를 한마디로 평가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대중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영삼씨는 대단히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한다"
똑같은 질문에 김영삼은 이렇게 화답했다.
"김대중씨는 아주 쉬운 문제를 대단히 어렵게 생각한다"
양 김씨를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일것 같다. 오랫만에 책을 통해 두사람을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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