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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투표를 마친 소회와 뉴욕타임스가 본 박근혜 당선

허탈하다. 지난 5년간 믿을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언론이 통제되고, 농민과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무능한 외교로 중국, 일본등 동북아시아 외교에서 소외되었던 정부, 정부를 비판하면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국정원과 국무총리실이 민간인 사찰을 하고, 측근과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던 정부, 설마 이렇게 국정을 운영하고도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받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박근혜가 인기는 있지만 노년층의 박정희 향수에서 비롯된 현상일뿐이라고 애써 그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도, 대선직전까지 이어져온 높은 지지율도, 정작 선거때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국민들의 힘에 의해 물거품처럼 깨져 나갈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박근혜 현상은 안철수 현상보다도 파워가 있었고, 국민, 국민 운운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과반수가 넘는 국민들은 우리가 꼴통보수라고 비아냥대던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내가, 우리가 틀린걸까? 그들이 말하던대로 내가, 우리가 친북, 빨갱이였던건가? 이명박, 새누리당 정부로부터 가장 소외받고, 피해받던 대부분의 시골 농촌의 농민들이 박근혜를 뽑았다. 노동자들의 도시라는 울산도 절대적으로 새누리당을 선택했다. 못사는 서민들도 박근혜를 지지했고, 충청도민들도 행정수도를 입안하고 추진했던 민주당보다는 노무현정부때 수도이전이라고 결사반대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이명박정부때는 원안보다 축소된 이전계획을 세웠던 새누리당을 더 지지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을 이해해야 하는건지...


누누이 얘기해오지만 부자들이, 재벌들이, 잘사는 사람들이, 기득권자들이, 지하경제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교육 광풍 혜택을 누리는 학원가들이, 등록금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학재단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건 백번 이해가 된다.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는건 당연한거다. 내가 그들이었어도 난 새누리당을 지지했을거다. 그런데 못사는 사람들이, 서민들이, 농민들이, 노동자들이 왜 더 열성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걸까? 일방적으로 편파적인 언론때문에? 혹은 선거때만 되면 시장에서 오뎅을 사먹는 '서민 코스프레' 때문에?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사교육을 제한하겠다는 뻔한 거짓말이 진짜같아서?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겠다는데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줄이겠다는 공약이 더 감동적이어서? 이도저도 아니면 마지막으로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이정도밖에 안되서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선거때마다 새누리당의 선거전략에 넘어가기 때문에?



나는 광주에서 살고있다. 이번에 광주지역은 전국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80%가 넘었으니 유권자 열명중 여덟명이 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지금껏 20 여년간 투표하면서 이번처럼 줄서서 투표해보기는 처음이다. 그렇다. 광주는 압도적으로 문재인을 지지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보고 "또" 라고 한다. 지역감정을 얘기하면서 호남사람들은 민주당을 못벗어난다고 조롱댄다. 나 역시 김대중을 찍었고, 노무현을 찍었고, 정동영을 찍었고, 문재인을 찍었으니 그들이 말한대로 지역의식에 사로잡혀 민주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인간인건가? 변명하자면 난 민주당만을 지지하지 않는다. 상식적인 민주주의 사고에서 더 나은사람에게 투표해 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다보니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반대하게 됐다. 왜 이런 행동이 '지역주의'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걸까? 왜 호남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게 비난받아야 하는걸까? 그나마 예전에는 동서로 갈라 서울경기, 충청, 호남이 같은 색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번 결과를 놓고보니 내가, 호남인들이 이상한게 틀림없다. 우리만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았던거다. 지역의식에 사로잡혀 묻지마 민주당 지지자들인게다...




인터넷 기사들을 뒤적이다보니 뉴욕타임스에서 이번 대선결과를 분석한 기사가 뉴시스에 실려서 소개한다. 외신보도의 논조는 거의 비슷하다. 이들도 이렇게 잘 아는것을 왜 우리 국민들은 모르는걸까. 아니 모른척 하고싶어 하는걸까.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한국 국민들이 친미 정권의 연장과 독재자의 딸을 선택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9일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타임스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저성장, 확대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을 안고 있는 한국 유권자들이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원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기사의 요약문.

이번 대선은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정희 정권 독재에 대한 논란과 보수와 진보의 대북 접근법,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처방을 놓고 첨예한 설전이 오간 선거였다.

낙선한 문재인 후보는 박정희 정권 때 반정부 투쟁으로 투옥되기도 한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대북 포용을 통해 북한을 억누르자는 2000년대 초의 진보 정책의 가치를 내세웠다.

박 후보의 당선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육아로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전망이다. 박 후보의 승리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박정희 시대에의 향수에 편승했기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의 김지윤 박사는 “박근혜 후보의 선거는 그녀의 여성성보다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18년 간 철권 통치를 한 박정희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반체제 인사들을 투옥하고 고문했으며 심지어 록뮤직과 미니스커트까지 규제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전후 한국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중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여론조사에서 전직 대통령 중 인기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정치적 경력은 비극적인 가정사에서 비롯됐다. 1974년 어머니가 공산주의 간첩에 의해 피살됐을 때 그녀는 22세로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퍼스트 레이디를 대행했고 5년 후에는 아버지마저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됐다.

이후 그녀는 공직에서 사라졌고 한국이 19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이루면서 박정희는 많은 이들로부터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은 아시아가 금융 위기에 처한 1998년이었다.

박정희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기억하던 유권자들은 그녀의 정당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하도록 했고 이후 그녀는 원칙있고 강단있는 지도자의 이미지가 심어졌다.

한국에서 여성은 한때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존재로 인식됐었지만 오늘날 대학과 일부 기업체에선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시집가면 직장을 그만두는 관행도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은 고위 공직자 중 3%의 비율에 그치고 대기업 이사회 임원도 보통 오너의 딸들로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후보의 민주당이 더 여성 친화적이라고 말한다.

비판가들에게 그녀는 ‘근혜 공주’로 통한다. 과거 대변인이었던 인사는 그녀가 우비를 입고 있을 때 직접 모자를 씌워주는 시중을 들어야 했고 햄버거를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판가들은 그녀가 박정희 정권의 잔혹함에 대해 사과했지만 대선에 출마했기 때문에 마지 못해 건성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회사원은 “남과 북이 독재자의 자녀를 지도자로 맞았으니 이제 세계가 코리아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robin@newsis.com

출처 : 12월 20일 뉴시스 인터넷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