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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조선의 독립을 꿈꾸던 친일귀족, 역사소설 '1535'

 

 

신아인이라는 작가가 쓴 역사소설 '1535'.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감성역사장편소설이라는 설명처럼 일제시대 독립군을 소재로한 선 굵은 스토리와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감정묘사가 곁들여져 감성역사소설이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기에 처음 작가 이름을 보고 여성작가인가? 했다가 문체를 보면 남성작가가 흔히 쓰는 문체라고 생각했는데 또 감정묘사하는걸 유심히 보다보면 역시 여성작가이겠구나~ 하고 추측하고 있다. 검색해봤는데 자세한 작가 소개가 안나와있는 것이 신인작가의 처녀작임을 알수 있다. 총론을 해보자면 살짝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도 하지만 꽤 잘 씌여진 수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일단 소설을 이끌어가는 등장인물들과 그 캐릭터가 개성있고 독특하다. 뿐만아니라 구도가 매우 치밀해서 단기간의 구상으로 씌여진 소설이 아니라는걸 쉽게 알수있었다. 참 대단한 작가다. 책에 나와있는 간략한 작가소개를 옮겨본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시각언어를 체득한 뒤 온라인 마케터, 브랜드 매니저 등의 직업을 거치며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해왔다. 이어 영상언어에 대한 호기심으로 드라마 분석기사를 써오던 중 '1535'를 구상하고 집필했다. 현재는 드라마제작사 '굿스토리' 소속작가로 활동하며 오감을 넘나드는 공감각적인 소통을 꾀하고 있다."

 

난 역사에 흥미를 갖고있어서 역사소설 역시 좋아하는 장르다. 하지만 이런 역사서들을 접할때 항상 아쉬웠던 부분은 삼국시대를 포함해 조선중기까지를 다룬 영화, 드라마, 소설들은 참 많은데 조선의 국운이 쇠하여가던 조선말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서, 영화, 소설들은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의 시대상에 대해 항상 목말랐다. 그런데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정확히 그 원인을 분석해놨다.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한 시대극이 오랜시간동안 다양한 세계를 구축해온 반면, 한국 근대사는 여러 이유로 외면받아왔다. 이중 가장 큰 이유는 패배감에서 기인한 상처 때문이다. 확실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통쾌함이 결여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독립운동을 하는 주인공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을 벌이거나 피맺힌 고뭉속에 죽어갔고, 그 결과 극이 내놓은 조선독립의 귀결은 타의에 의한 수동적인 해방이었다. 카타르시스의 부재인 셈이다.


소설 '1535'는 네가지 가정을 가지고 출발한다.

첫째, 만일 조선철도를 역행하는 지하통로가 존재했다면?

철도는 일제가 우리땅에 가장 먼저 건설한 근대화의 산물이다. 일각의 친일파들이 주장하는대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의 식량과 자원을 약탈하고 대륙침략을 위한 물자운송을 위한 목적이었다. 소설에서는 역으로 조선땅 곳곳을 연결하는 비밀 지하통로가 구축되어 있어 일본군의 허를 찌르는 독립군의 활동이 가능하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다.


둘째, 자살권총으로 통하는 일본군의 94식 남부권총이 조선인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제작된 거라면?

일본의 총기 전문가인 기리조 남부 대령에 의해 제작된 이 권총은 조악한 설계로 인해 오발사고가 많아 '자살권총'이라는 악명을 얻었음에도 저렴한 생산단가와 간단한 구조로 일본군 장교들의 주축 화기로 이용됐었다. 그런데 이같은 조악한 권총이 고도의 목적을 가진 독립군의 참여로 설계되어 보급된 화기라면? 이런 가정, 생각만해도 통쾌하다.


셋째, 지배자 위에 선 조선인, 일본인들을 쥐락펴락하는 조선귀족이 존재했다면?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큰 가정이라고 할수있다. 주인공 정민석은 조선인임에도 친일의 댓가로 후작 작위를 받은 부친과 함께 자작 작위를 천황으로부터 수여받는다. 이때문에 수많은 일본 순사, 총독부 직원들까지 발아래 두고 쥐락펴락 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친일파라 하더라도 식민시대에 조선인이 일본 고위 관료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맘껏 욕설을 퍼붓고, 경찰 병력을 움직인다는 가정은 흥미진진하다.


넷째, 총독을 암살하려는 일본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독립군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속에는 조선에 부임한 총독을 암살하려는 독립군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의 병력들이 상식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반대다. 조선총독부의 경무국장 마모루는 총독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하고, 이를 눈치챈 항일단체 한일단은 반대로 극비리에 총독을 보호하려고 맞선다. 그 이유는? 철저히 위장된 친일행각으로 총독의 신임을 받는 정민석이 계속해서 고급정보를 독립활동에 지원할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가정들을 바탕으로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소설의 재미를 만끽할수 있다. 또 뻔한 스토리에 획일적인 끝맺음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다보니 이게 해피엔딩이라고 보기도, 그렇다고 새드엔딩이라 보기도 어렵다. 다만 읽고나서 가슴이 저릿하니 감흥이 오래남을뿐... 서두에 살짝 아쉽다고 한 부분은 여성작가가 남성적인 소설을 쓰다보니 간혹 어색한 극 전개가 눈에 띄기도 한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주는 깜짝 이벤트~ 2권을 모두 읽고 말미의 '작가의 말'을 펼쳐보니 제목이기도 하고, 독립군들의 암호로 사용되기도 한 비밀암호 '1535'가 책장속에 숨어있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나서도 개운하지 않게 만드는 의문점.. 독자들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마지막 암살범의 정체. 과연 누가 범인일까? 

 

1535 1
국내도서>소설
저자 : 신아인
출판 : (주)아이웰콘텐츠 201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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